설법보기 글답변
본문 바로가기
두타산 삼화사
삼화사 템플스테이
국행수륙대재
로그인
회원가입
찾아오시는 길
메인메뉴
삼화사
신행생활
불교대학
요양원
커뮤니티
삼화사
주지스님인사말
역대주지스님
연혁
건립연대
삼화사유래
삼화사설화
문화재소개
조직구성
찾아오시는 길
신행생활
법회안내
설법보기
금주의법구경
불교대학
학교소개
불교대학연혁
전형안내
학사일정
학생회활동
불교도서관
요양원
소개
시설현황
후원&자원봉사
입소안내
커뮤니티
공지사항
자료실
포토갤러리
동영상자료실
신행생활
SAMHWASA TEMPLE
법회안내
설법보기
금주의법구경
설법보기
home
신행생활
설법보기
프린트
이름
필수
비밀번호
필수
이메일
제목
필수
내용
필수
웹에디터 시작
> > > 마음 챙김의 지혜 100가지 > > > 혹 이런 의문이 들지도 모르겠다. 그냥 바라보는 것이라면 경전공부도 바라보는 것 아닌가 하고 말이다. 그러나 ‘바라보기’와 ‘경전공부’는 큰 차이가 있다. ‘바라보기’는 오감, 생각, 감정으로 요동하는 ‘에고’를 비우고 ‘참 자아’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며, ‘경전공부’는 ‘에고’를 써서 눈으로 보고, 생각하고, 추리하고, 판단하고, 기억하는 것이다. > 하나는 ‘에고’를 비우는 공부이고, 하나는 ‘에고’를 활용하는 공부이다. 그래서 이 둘은 서로 병행해야 옳다는 것이다. 그러나 어디까지나 공부의 핵심은 ‘참 자아’의 복원이니, 생각, 감정, 오감의 관조를 통해서 에고를 비우고, 나아가 자신의 본래면목을 온전히 바라ㄱ보고 그와 합일되는 ‘바라보기’공부가 더욱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. ‘나, 내 것’만을 찾는 ‘에고’를 비우지 못하는 한 번뇌, 망상은 끝이 없을 것이니, 경전공부만으로는 끝내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할 것이다. > > 예컨대 어떤 사람이 자신의 눈을 보지 못한다고 자신이 눈이 없다고 여기면서, 다시 그 눈을 보고자 바라는 것과 같다. 이미 자신의 눈인데 어찌하여 다시 보려하는가? 만약 잃어버리지 않은 것만 안다면, 이미 그 눈을 본 것과 같을 것이다. 다시 보고자 하는 마음이 없다면, 어찌 보지 못하였다는 생각이 있을 수 있겠는가? > 자신의 ‘신령스러운 앎’도 이와 같도다. 이미 자신의 마음인데, 어찌 다시 알고자 하는가? 만약 알기를 구한다면, 마침내 알 수 없을 것이다. 다만 모른다는 것만을 똑똑히 알면 되니, 이것이 바로 자시의 ‘본성’을 본 것이다. > > 2가지 업장의 정화가 있으니, 예컨대 ‘업장’이 있으면 그것은 무지와 아집의 두 가지 속성을 가지고 있다. 이 가운데에서 무지는 지혜로 없애야 하고 아집은 자비로 없애야 한다. > > 우리의 마음은 온갖 번뇌와 망상으로 잠시도 쉬는 일이 없다. 이러한 ‘잡념’의 소용돌이를 벗어나기 위해서, 우리는 정신을 한 가지 대상에 집중하는 ‘일념’ 즉 ‘마음챙김’을 닦아야 한다. 정신을 한 가지 대상, 주제에 몰두할 수만 있다면, 우리의 정신을 평화로워지고 고요해질 것이며 점차 깨어나게 될 것이다. 이러한 경지가 깊어짐에 따라 우리는 일체의 생각이 끊어진 ‘무념’을 체험하게 될 것이며,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의 본 모습, 사물의 본 모습을 홀연히 깨닫게 될 것이다(견성). > > > 부처님의 호흡법-몸 > > 1. 길게 들이쉬면서 “길게 들이쉰다”는 것을 잘 알아차리고, 길게 내쉬면서 는 “길게 내쉰다”는 것을 잘 알아차린다. > 2. 짧게 들이쉬면서 “짧게 들이쉰다”는 것을 잘 알아차리고, 짧게 내쉬면서 는 “짧게 내쉰다”는 것을 잘 알아차린다. > -길고 짧은 호흡이 각각 육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관찰함 > 3. 호흡을 하는 중에 온몸에서 느껴지는 각 제반 감각을 두루 경험하면서 들이쉬며, 이를 두루 경험하면서 내쉰다. > -호흡과 육체의 상호관계를 관찰함 > 4. 몸의 여러 작용들을 편안하게 만들면서 들이쉬며, 몸의 여러 작용들을 편안하게 만들면서 내쉰다. > -4단계의 선정을 두루 체험하면서, 호흡으로 육체를 조절하는 법을 터득 > 대승불교에서는 이 단계에서 닦는 수련법을 > 1)수(數)-호흡을 숫자를 세면서 헤아림 > 2)수(隨)-숫자를 세자 않고 들어오고 나가는 호흡을 따라다니며 느낌 > 3)지(止)-마음을 고요히 하고 선정에 들어감 > 4)관(觀)-사물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관찰함 > 5)환(還)-완벽한 참 자아의 경지를 회복하고자 자신을 정화함 > 6)정(淨)-모든 번뇌가 정화되어 참 자아의 본래 모습을 회복함 > 의 6가지로 정리하여 ‘6가지 신묘하게 진리로 들어가는 문’(육묘법문). > > > 느낌 > > 1. ‘희열’을 경험하면서 들이쉬며, ‘희열’을 경험하면서 내쉰다. > -제 2선정의 경지까지 체험해야 함 > 2. ‘즐거움’을 경험하면서 들이쉬며, ‘즐거움’을 경험하면서 내쉰다. > -제 3선정의 경지까지 체험해야 함 > 3. ‘마음의 작용(느낌)’을 경험하면서 들이쉬며, ‘마음의 작용’을 경험하면서 내쉰다. > -4단계의 선정을 모두 체험하면서 마음이 겪게 되는 각종 ‘느낌’의 원인과 작용을 두루 이해함 > 4 ‘마음의 작용’을 편안히 하면서 들이쉬며, 마음의 작용을 편안히 하면서 내쉰다. > -4단계의 선정을 통하여 ‘느낌’을 자유자재로 조절하는 방법을 터득함 > > > 마음 > > 1. ‘마음’을 경험하면서 들이쉬며, ‘마음’을 경험하면서 내쉰다. > -4단계의 선정을 통해 ‘마음’의 원인과 작용을 모두 이해함 > 2. 마음을 ‘기쁜 상태’로 만들면서 들이쉬며, 마음을 ‘기쁜 상태’로 만들면서 내쉰다 > -마음을 만족스러운 상태로 조절하는 법을 터득함 > 3. 마음을 ‘집중’하면서 들이쉬며, 마음을 집중하면서 내쉰다. > -‘선정’을 통해 마음을 안정시키는 법을 터득함 > 4. 마음을 ‘해탈의 상태’로 만들면서 들이쉬며, 마음을 ‘해탈의 상태’로 만들 면서 내쉰다 > -제 4선정에 들어 마음을 고요하고 안락하게 하는 법을 터득함 > > > 법 > > 1. ‘무상’을 관찰하면서 들이쉬며, ‘무상’을 관찰하면서 내쉰다 > -현상계의 모든 사물들이 늘 변화하여 무상함을 관찰함 > 2. ‘탐욕에서 벗어남’을 경험하면서 들이쉬며, ‘탐욕에서 벗어남’을 경험하면 서 내쉰다 > -현상계에 대한 집착들이 점차 느슨해짐을 알아차림 > 3. ‘집착의 소멸’을 관찰하면서 들이쉬며, ‘집착의 소멸’을 관찰하면서 내쉼 -현상계에 대한 집착이 소멸됨 > 4. ‘놓아버림’을 관찰하면서 들이쉬며, ‘놓아버림’을 관찰하면서 내쉰다. > -자신의 본래 모습을 회복함 > > 불교의 4선정과 멸진정 > > 1선정 > -정신이 하나로 집중됨 > -미세한 생각이 존재함 > -희열, 즐거움이 존재함 > 2선정 > -정신이 하나로 집중됨 > -생각이 존재하지 않음 > -희열, 즐거움이 존재함 > 3선정 > -정신이 하나로 집중됨 > -생각이 존재하지 않음 > -은은한 즐거움만 존재함 > 4선정 > -정신이 하나로 집중됨 > -생각이 존재하지 않음 > -희열, 즐거움이 모두 존재하지 않음 > 멸진정 > -4선정에는 ‘나’ 라는 존재감이 확연함 > -멸진정은 ‘나’라는 존재감을 초월함 > > > > > 달라이 라마와 함께 지낸 20년 > > > 이곳 티베트 승가의 체제는 경장에 의거한 철저한 교육이라서 어떤 법회이든 간에 교재가 꼭 있다. > 필자가 한국에서 큰 스님의 법문을 들을 때 불만을 가졌던 한 가지는 부처님의 말씀이 아닌 ‘고인이 이르되’아니면 전설 따라 삼천리 한 편 정도로써 시작하고 끝을 내는 법문이 많았던 것이다. > > 필자가 군 제대하고 복학하여 학교 다닐 때 들은 얘기다. 나에게 그 얘기를 해준 학생은 지금 전주교구 신부님이다. 초등학교 때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전에 나무를 좋아해서 집 주위엔 여러 종류의 나무를 심어 놓았고 집을 아예 나무 울타리로 빙 두러 만들어 놓았다. 그러던 어느 날 아버님이 돌아가셨는데 모든 나무들이 서서히 다 죽어 버렸다는 것이다. 그 얘기는 지금도 생생하다. 하긴 불가에는 ‘유정, 무정이 개유불성’이라 해서 생명 있고 없는 모든 것에 부처의 성품이 있다고 한다. > > 인도에선 무슨 일이든지 좀 차분하게 천천히 진행된다는 것을, 인도에서 꽤 오랫동안 공부하고 떠난 분의 글에서 읽었다. > 아버지가 아들에게 구구단을 가르쳤다. > “얘야, 자 어제 공부했던 구구단을 외워보자. 팔구는 얼마냐?” 한참을 생각한 아들이 “칠십”이라고 대답하니 “음, 잘했어. 이거 떡 하나 먹어라”하고 떡을 준다. 옆에서 듣고 있던 아내가 왜 주냐고 하자 아버지 왈 “나도 알아야. 우리 아들이 어제는 팔십이라고 했거든요, 아마 내일쯤이면 맞출 수 있을 거예요.” > 인도인의 여유 있는 심성을 멋지게 비유했지 않았는가? > > > > > 경허의 무심 > > 비록 몸뚱이는 살아 있으나 내 마음을 찾으려면 이미 죽은 송장의 몸으로 여겨야 하며 세상일이 좋으나 싫으나 다 한갓 꿈으로 알라. 사람의 생사는 누구도 알지 못하니 아침에 만난 사람이 저녁에 죽고 저녁에 만난 사람이 아침에 죽는 것이 또한 세상의 이치다. > 또한 죽어 천당과 지옥에 가서 짐승도 되고 귀신도 되어, 구천을 한없이 떠도는 고통을 맛보아야 하는 것도 사람이다. 이는 바로 사람이 가진 업보가 아닌가. 그러기에 세상만사를 다 잊어버리고 항상 내 마음을 궁구하여 보라. 그리고 듣고 말하는 일체의 형상을 생각하라. > > 세상일을 똑똑히 분별하려고 하는 것은 똥 덩어리를 가지고 음식을 만들려는 것과 같고, 진흙 가지고 흰 옥을 만들려는 것과 같다. 성불하여 마음을 닦는 데는 그것조차 쓸데없는 짓이니 부디 세상일을 잘하려고 하지 말라. > > 일체 세상일이 다 허망하다 하시고 중생의 모든 하는 일이 다 나고 죽는 법이라 오직 제 마음을 깨달아야 진실한 법이 된다. > > 오늘은 비록 몸을 보존하나 내일은 보존하기 어렵다고 하였다. 사람은 단 하루를 살더라도 왜 내가 살고 있는가를 명심해야 하며 정신을 바짝 차리고단 한 시간이라도 게으름이 없어야 한다. 보다 중요한 것은 이 어지러운 세상에 실로 마음을 고요히 하는 것이다. 그저 하염없이 지내야 한다. > > 모든 일이 모두 마음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니 착한 일을 하면 천당에 태어나고 악한 일을 하면 지옥에 태어나고 포악하면 범과 이리가 되고 어리석으면 지렁이와 곤충이 되며 가볍고 분주하면 나비가 되나니 그러므로 옛 사람이 이르되 “다만 한 생각의 차이가 그대로 만 가지 형상으로 나타난다”고 하였다. > > 동산 화상이 이른바 > “가사 아래 사람의 몸을 잃는 것이 괴로운 것이다” > > 석가께서 말씀하시길 > “죽음이란 느티나무의 많은 잎들 중에 한 잎이 지는 것과 같다” > >
웹 에디터 끝
링크 #1
링크 #2
파일 #1
파일 #2
자동등록방지
자동등록방지
숫자음성듣기
새로고침
자동등록방지 숫자를 순서대로 입력하세요.
취소
개인정보처리방침
삼화사소개
템플스테이
불교대학
노인 요양원
오시는 길
패밀리사이트
삼화사 바라밀유치원
대한불교조계종 국행수륙도량 두타산 삼화사
강원도 동해시 삼화로 584
Tel. 033-534-7661~2
Fax. 033-534-7546
템플스테이 문의. 033-534-7676
동해불교대학. 033-534-7663
요양원. 033-522-0500
Copyright ⓒ samhwasa temple. All Rights Reserved.
페이지 상단으로 가기